[복지칼럼] 접근권과 자기 존중

작성자
노원 복지샘
작성일
2022-08-02 10:53
조회
2774


[출처] 경향신문


이십대 중반, 어느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십을 할 때였다. 업무 절차 중 출근이 가장 어려운 과업이었다. 마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자폐인 주인공이 회전문을 통과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신중을 기하듯, 지체장애인인 나는 심호흡 끝에 몇 가지 무거운 문을 밀 수 있어야만 사무실 내 착석이 가능했다. 통로 사이 무거운 문을 만날 때면 목발을 겨드랑이로 쥐고 힘껏 손바닥으로 문을 밀어보았지만, 문은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앞뒤로 몇 번 휘청거리다가 다시 닫혔다. 지체장애인이 쉽게 지날 수 있는 자동문으로 교체하거나 가벼운 문으로 바꾸는 방안을 알아봤지만 모두 실현 불가능했다. 소방법상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임대차 계약에도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결국 회사는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 앞을 드나들 때마다 아래층 경비요원을 호출해 문을 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와서 또 한 번, 외부 미팅 스케줄이 있는 날 또 한 번, 언제나 사무실을 드나들 때면 계속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도움 요청이 지속되자 머잖아 스스로 민폐만 끼치는 사람 같아 자괴감을 느꼈다.



위 일화에서 볼 수 있듯, 장애인에게 접근권은 단지 물리적 접근 가능 여부를 넘어, 심리적 존중 및 자신감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동권이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대중교통수단 보장’에 대한 권리라면, 접근권은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일상적 수단과 방법의 보장’과도 같다.

접근권의 시각에서 보면 장애인의 사회 참여 중 불공정함이 더 적나라하게 보인다. 최근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두고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는 서울경찰청장의 발표가 나오자, 장애인 활동가들이 쫓아올 것 없이 자진 출석하겠다고 경찰서에 간 적 있었다. 그들은 종로서, 용산서, 혜화서에 자진출석했지만, 모든 경찰서에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화장실 편의시설이 미비한 이유로 끝내 조사받지 못했다. 불법 장애인들을 엄벌에 처한다는 경찰의 발표가 무색하게도, 정작 경찰 역시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 앞에서 관련 법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사법절차 진행 과정에서 공정한 수사를 받는 것은 중요한 시민의 권리임을 명시하며 ‘사법 접근권’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인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공정한 사법 접근권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 속 접근권의 제약은 만연하다. 투표소 접근권의 제약으로 주권 행사를 포기한 장애인, 장애인 편의시설 면적 기준 제한으로 편의점이나 카페 출입을 단념한 장애인, IoT 연동 아파트 지능형 홈패드에 점자가 없어 아파트 문을 열거나 보일러를 조작할 수 없는 장애인, 편의시설 없는 무인 키오스크로 우동 하나 주문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여전하다. 제도적 접근권의 공백은 개인적 무기력감으로 이어졌다. 장애인들은 이 모든 예외적 상황을 마주할 때면 지나가는 타인의 옷소매를 붙잡고 ‘무례한’ 도움 요구를 감내해야만 했다.

접근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자기 존중이 가능한 사회를 도출한다. 스스로 드나들 수 있고,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도 밥 먹을 수 있는 권리의 실현은 곧 부끄럼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붕괴되지 않는 삶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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