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동향] 12살부터 치매 할머니 돌봤다…"죽어야 끝날까" 어린 가장 눈물

작성자
노원 복지샘
작성일
2022-12-19 15:45
조회
1677

[출처] 중앙일보

[원문보기] 12살부터 치매 할머니 돌봤다…"죽어야 끝날까" 어린 가장 눈물 | 중앙일보 (joongang.co.kr) 

초등학교 2학년생인 인아(가명·8)는 근육암을 앓는 아빠, 80대 할머니와 산다. 할머니는 고관절, 자궁 적출 등으로 최근 몇 년 새 수술을 6차례 받았다. 인아가 설거지, 청소 등을 자주 보조한다. 할머니는 손녀 대신 움직이려 애쓰지만, 인아 도움이 종종 필요하다. 인아는 “요리는 잘 못 한다”라며 “불 쓰는 건 무서워 어른들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매일 저녁 할머니, 아빠 다리를 주무르고 장 볼 때 무거운 것을 대신 들기도 한다. 얼마 전 10㎏ 정도 되는 쌀을 옮겼다고 자랑스레 얘기하며 “사실은 힘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할머니는 손녀가 자신과 아들의 부양 부담을 짊어지게 될 날이 걱정스럽다.

태주(가명·17) 아빠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태어났고 엄마는 산후조리도 못 한 채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태주가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주는 등 동생을 많이 돌봤다. 엄마 건강이 나빠진 뒤로는 빨래와 청소 등도 도맡았다. 태주는 물류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경제적 부담도 짊어졌다.


인아(가명·8)가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인아(가명·8)가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질병·장애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아동·청소년 10명 중 2명 이상은 초등학생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해외에서 ‘영케어러(young carer)’로 불리며 국내에선 지난해 대구에서 중병을 앓던 아버지를 돌보던 20대 청년의 간병 살인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6월 24일~7월 31일 최근 1년 내 재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만 7~24세(양육시설 거주 제외) 1494명을 온라인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46%(686명)는 “가족 돌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22.9%(157명)로 나타났고, 중학생 28.4%, 고등학생 40.1%였다. 이런 결과는 정부가 올 초 처음 만 13~34세를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서 누락된 이들이 상당수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전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청년 정책 이슈로 접근하다 보니 초등학생은 사각지대에 놓여 향후 지원에서 소외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모든 아동을 포함해 조사를 설계하고 대상자 참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직접 방문 등의 조사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절반(50.5%)은 1년 이상 가족을 돌봤다고 답했고, 돌봄 기간이 5년 이상으로 장기인 경우도 28.3%에 달했다. 이 가운데 60%는 중·고등학생으로 나타나, 초교생 때부터 학업을 수행하며 돌봄, 생계 등의 책임을 졌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돌봄 기간과 무관하게 경제적 지원(86.1%)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았으며, 가장 많이 하고, 가장 힘든 돌봄은 가사지원으로 나타났다.


아픈 할머니를 위해 대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인아(가명?8)의 모습.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픈 할머니를 위해 대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인아(가명?8)의 모습.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들의 가족 형태를 보면 한부모(58.7%), 부모자녀(24.6%), 조손(14%) 세대 순이었다. 한전복 본부장은 “한부모나 조손 가정은 주 돌봄자인 성인이 아프거나 돌볼 수 없는 경우 아동이 바로 돌봄자로 전환돼 가족 돌봄에 쉽게 노출된다”라며 “한부모 세대는 다른 유형보다 ‘혼자서 돌봄을 부담’하는 빈도가 높았다”고 했다.

돌봄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 걱정하는 ‘심리 정서적’ 어려움(36%)을 가장 큰 문제로 들었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민아(가명·18)도 기숙사에서 지내는 평일에는 80대 조부모에 수시로 연락해 식사는 했는지, 몸이 불편하지 않은지 확인한다. 민아는 “(조부모가)연세가 있어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삶이 계속되면 자신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조차 인지 못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래를 준비해야 할 기회를 제한, 박탈한다”라며 “정서적 시달림은 정신건강 문제로도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은 돌봄을 받아야 할 입장인데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을 전담하게 하는 건 권리 침해 문제”라며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국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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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아영(가명)씨는 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빠를 따라 두 살 어린 동생과 할머니 집으로 왔다. 12살 때 할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역할이 커졌다. 할머니 호출로 수업 도중 달려간 적도 잦았다. 아영씨는 “어린 나이에 보호자가 됐는데 돈도 없고 병원에 동행할 어른도 없었다”라며 “어디서, 누구한테 도움받아야 할지 몰라 내 몫이라 여겼다”고 전했다. 대소변을 못 가리고 전기장판에 불을 내는 등 할머니 상태가 심각해지자 대학교는 휴학하고 24시간 할머니를 돌봤다. 그는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지쳐 할머니나 내가 죽으면 돌봄이 끝날까 안 좋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한전복 본부장은 “효자, 효녀로 칭찬하면서 아동·청소년의 돌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성장과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면서 보조적 수준으로만 역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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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43.1%는 가사 등의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어떤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도움을 받은 경우 복지시설(25.1%), 공공기관(15.6%), 친인척(11.7%)으로부터였다. 학교 지원은 2.6%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빈곤, 학대 아동 못지 않게 이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촘촘히 지원하기 위해 영국 등처럼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권지성 한국침례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별법 형태로 만들어 지원하는 게 필요하지만 오래 걸릴 수 있으니 지방 조례 등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와 적극 협력해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에선 위기 징후가 보일 때 학교 상담사, 복지사 등과 연계한다. 허민숙 조사관은 “학교에서 잦은 결석, 과제 미제출, 불성실한 수업태도를 보인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며 “어느 곳에 연계해 줘야 하는지 지침서를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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