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휠체어 생활자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를 힘겹게 건너고 있다. 백소아 기자

황시운 | 소설가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산책하듯 전시를 관람한 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려울 게 없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 간단하고 평범한 일정을 실행할 용기를 내기까지 장장 11년이나 걸렸다.
2011년 봄에 일어난 추락사고로 척수가 손상되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리고 척수손상 후유증으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게 됐다. 사고 이후 내 인생은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산책과 미술관을 좋아하던 나는 더는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휠체어 생활자가 됐고, 경제적으로 한없이 무능력해졌으며, 온종일 하반신이 불에 타거나 살갗을 사포로 갈아내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아침에 몸의 절반을 잃고 휠체어를 타게 된 내게 세상은 불친절하기만 했다. 문밖으로 나서면 온갖 턱과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고, 믿었던 사회안전망은 성기고 약해서 나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 게다가 마약성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끔찍한 통증은 번번이 내 발목을 잡았다. 세상이 내게 등을 돌렸다고 믿었다. 그리고 내게 등 돌린 세상을 피해 긴 세월 좁은 방 안에 숨어 웅크리고 있었다. 다시 산책하고 미술관에도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봄.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고 또 걷는 꿈을 꾸기 시작한 뒤의 일이었다. 꿈이 거듭될수록 바람은 점점 더 간절해졌다. 친구에게 반복되는 꿈과 그로 인해 갖게 된 바람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