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조형근 | 사회학자
“누나도 연애하고 싶어요?” “그, 그, 그럼, 하고 싶지, 나도. 화장도 이쁘게 하고, 매력적이고 싶지. 키스도 다, 달콤하게 하고 싶지. 그, 근데 남자가 없지.” “남자 놈들이 다 바보다. 누나 이쁜데.” “너, 너도.” “하하하.”
지난해 12월 초 어느 밤, 한달살이 하던 제주의 숙소, 게스트들이 숨죽이고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누나 역의 은혜씨가 대사를 잊으면, 상대역인 아버지가 “누나도 연애하고 싶어요?” 하고 다시 시작했다. 연습이 이어지고 밤이 깊어갔다. 드라마는 이듬해 봄에 공개된다고 했다. 그녀의 출연은 비밀이니 함구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근사한 비밀이 생겼다.
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꽤 화제가 됐다. 드라마 속 저 이야기도 그랬다. 발달장애인 영희는 서울의 장애인거주시설에 산다. 유일한 혈육은 쌍둥이 동생 영옥이다. 영희의 존재를 아는 순간 남자들이 떠난다. 천형 같은 돌봄의 굴레를 벗어나려 제주로 온 영옥에게 따뜻한 연하남 정준이 다가오지만 영옥은 냉소한다. “너도 결국 떠나겠지.” 찾지 않는 영옥에게 분노한 영희가 제주로 찾아온다. 그리고 동생의 연인 앞에서 말한다. 나도 너희처럼 욕망이 있는 인간이라고. 정준이 영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영옥도 정준을 받아들인다. 모두의 처지가 납득된다. 드라마는 희망을 그린다. 숙제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