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 보는 복지 정보
출처 : 복지동향
원문바로보기 :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now/2014926?cat=291&paged=0
김성욱ㅣ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인터뷰 및 정리ㅣ 김찬울, 예상호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 참여연대 실습생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데에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우리 사회를 점유한 성장과 효율의 논리가 중도와 합리로 굳어지면서, 권리와 책무에 대한 논의는 어느새 ‘급진적인 것’이 되었다. 산적한 난제들 앞에서도 미봉책을 반복하는 관성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한다. 이러한 현실을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사회복지가 과연 그 역할과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사회복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새롭고 신선한 사회정책이 부재해서라기보다 기존의 제도가 불충분해서 그런 것 아닐까? 이러한 질문 속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의 신임 학회장, 김성욱 교수를 만났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둘러싼 현시점의 쟁점을 짚어보고, 사회복지학의 향후 방향성을 고민하는 지적 초석을 다져보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성욱이라고 합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이자 올해부터는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이하 비판학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하신 계기,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사회학과인 줄 알았어요(웃음).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과가 사회학과였거든요. 당시 사회학과를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가 나왔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교수님 의견에 막 반대도 하고(웃음). 그런 멋진 학문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인문반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공부 조금 한다는 애들은 ‘사회학과 가야지’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잘 상상이 안 가겠지만 당시 시골에는 인터넷도 없던 시기여서, 대학 관련 포스터 하나를 보고 내린 결정이 20대 인생을 좌우하기도 했어요. 담임선생님과 함께 대학을 찾던 중 사회복지학과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사회학과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진학을 결정했죠. 부모님께는 진학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 이어나갈 거라고 통보하기도 했고요.
사실 신입생 때는 제가 기대하던 학풍과 달라 다소 방황했어요. 제가 기대하던 투쟁의 정서보다는, 선함과 무해함이 느껴진 곳이었거든요. 그래도 전역 후 복학하면서 사회복지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졸업 뒤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알바도 하고, 때로 방황도 했지만 자취하던 곳 근처에 있던 사회복지정보원을 접하게 되었어요. 들어봤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전국 사회복지 전공생들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던 곳이거든요.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겨울 합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복지순례를 가거나 백두대간을 오르면서 다양한 활동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었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실행위원으로 10년간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비판학회에 가입하신 계기와 당시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시민단체 활동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시민단체의 성과가 본연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의문이 들어 그 역할을 크게 믿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저는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직접 운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러던 중 은사님 한 분께서 “너희는 논문과 글을 무기 삼아 전사처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죠. 사실 이런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어요. 이 말씀이 마음에 남아 “혼자 싸우는 것보다는 함께 모여 싸울 곳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시민단체만한 곳이 없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기도 했죠. 주변의 다른 분들과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했는데, 참여연대에서 어느 날 먼저 연락이 왔더라고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어떤 곳이지 2년 정도 지켜보자는 마음에 활동을 시작한 것이 벌써 지금에 이르렀네요.
사실 제가 참여연대에서 하는 활동들이 다른 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년 스스로 질문해도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활동의 의미를 위해서는 모이는 편이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도 많이 들었고, 쉽게 보내주시지 않을 거예요. 사실상 나갈 수가 없는 거죠(웃음).
비판학회는 처음 어떻게 가입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비판학회는 제 석사과정 시절 시작된 세미나가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몇몇 대학교의 젊은 교수님들이 복지국가에 대해 한창 논의하던 중 대학원생 제자들을 불러 함께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고 그것이 비판학회로 성장하게 된 것이죠. 저도 그 설립 과정 속에서 가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웃음).
여러 직책을 역임하시고 학회장의 자리까지 오르셨는데 소회가 어떠신가요?
학회장은 사실 다들 안 하려고 해요(웃음). 각종 협의나 전화, 메일은 기본이고 일이 정말 많아요. 행정 업무도 많아지고, 참석해야 할 일정도 많아지거든요. 그래도 학회장이라는 직책은 학회의 기조에 동의하고 부회장과 수석 부회장 등의 직책에서 수 년간 활동하며 학회에 어느 정도 기여한 사람들이 맡게 돼요. 저 역시 2년 간 부회장을 하다가 수석부회장 제의를 받았고, 올해에는 회장직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비판학회는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설립되었으며, 다른 유사학회와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나요?
다른 학회와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우리 학회는 젊어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비판사판’이라는 대학원생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고, 신진 분과도 매우 잘 운영되고 있어요. 단순히 행사에 몇 번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신진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는 대학원생들이 서로의 연구를 안전하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고, 다음 연구로 이어지는 연결망을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런 분위기와 운영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죠. 사실 저희 학회의 시작부터가 ‘정회원’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회원이 아니더라도 젊은 신진 연구자들을 육성하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거든요. 폐쇄적인 곳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자라나는 장이 되도록 구조를 설계해왔던 겁니다. 그렇기에 자격보다는 관심, 실적보다는 열의를 먼저 물어보고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름에 ‘비판’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이름 때문에 때로 후원을 꺼리거나 불편해하시는 분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비판은 사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말이 아니잖아요. 당연하게 여겨 온 전제들을 질문하고, 도외시되어 온 문제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의 체제를 돌아보는 작업이죠. 이를 위해 뒤에 숨은 권력 관계나 책임을 드러내야 하는데, 선한 의도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성과와 능력 중심의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무엇이 그 격차를 별 것 아닌 문제로 포장하는지를 추적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최대한 어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현안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비판학회가 이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무라고 봅니다.
비판학회의 활동이나 성과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성과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 역시 신진분과랑 비판사판 네트워크죠. 물론 제가 자랑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학회 자체가 그렇게 시작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역대 회장님들의 노력과 위원장님들,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이니까요. 학회의 전체적인 활동 면에서 보자면, 어떤 특정한 하나의 ‘이벤트’를 성과로 꼽기보다는 우리 학회가 가진 고유한 루틴을 자랑거리로 소개할 수 있겠네요. 우리 학회는 사회적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거철에는 그 국면에 맞는 복지 의제를 던지고, 경제 위기가 닥치면 그에 걸맞은 비판적 분석과 대안을 즉각적으로 내놓는 식이죠. 그리고 굉장히 참신해요.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때를 복기해 봐도 그렇습니다. 국가적 위기에서 지체없이 곧바로 논의를 시작해 성명을 내고 대처했습니다. 현장의 위기에 대처하고 즉각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학문을 활용한다는 점, 저는 이 기민함이 우리 비판학회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자 높게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학회 내 대학원생 네트워크인 비판사판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비판사판 네트워크는 다른 학회에서는 보기 힘든 대학원생만의 네트워크죠. 아마 이런 네트워크가 있는 학회를 찾기가 힘들 거예요. 사회복지 대학원생이라면 응당 들어와야 하는 곳으로 알려져야 해요. 사회복지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면 비판사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돼, 이런(웃음). 다만 아무래도 학회가 정책을 중심적으로 다루다보니 임상 분야 연구자 입장에서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임상과 현장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비판학회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비판사판의 최우선 목적은 전공 분야에 상관없이 대학원생들이 자발적으로 세미나 같은 활동을 열고, 이를 통해 연구 역량을 키우는 것이거든요. 결국 신진 연구자로서 발돋움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비판사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석사 전공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사회사업이었어요. 제 학위 논문도 정책과 전혀 상관 없는 내용이었고요. 그렇다고 문제될 거 있나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언제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새롭게 취임하신만큼 앞으로의 기대가 크실 것 같습니다. 비판학회 활동을 통해 새롭게 이루고 싶으신 점이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프로토타입 수준에서 기획 중인 활동이 있어요. 관련된 발제도 예정이 되어 있는데요. 어떤 문제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책 현실에 대해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의 진단과 설명을 해보자는 취지죠. 굳이 말하자면 ‘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은 현 정부가 표방하는 ‘기본사회’ 슬로건의 기본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회복지 학계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수많은 정책 제언을 하고, 거리에 나가 투쟁하고, 끊임없이 글을 써내려가고 이를 발표하면서, 설득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런데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예컨대 AI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산업 구조조정이나 향후 인구 구조 같은 것들이죠. 이런 거대한 ‘외생변수’들은 사회복지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흔히 ‘자본주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을 논할 때 생산 체계와 분배 체계가 상호 조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복지는 생산 영역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통제보다는 변화에 대한 ‘사후적 대응’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그 대응의 과정에서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치 않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어요. 우리가 그동안 이 본질적인 이야기를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죠. 그래서 아직 가안이지만, 다가올 춘계학술대회에서도 화두로 ‘다시 국가를 소환하자’는 제안을 하려 합니다.
그동안 비판학회에서도 민관협력, 지자체의 역할, 시민단체의 자율성과 네트워킹 같은 논의들이 활발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다 중요한 얘기들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저변에 놓인 ‘국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규정하지 못했어요.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하며, 어떻게 사회를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죠.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국가는 5년마다 바뀌는 단임 정부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겁니다. 선거마다 변화하는 정치적 외풍과 정쟁에 종속되지 않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장기적 시스템으로서의 국가를 논해야 합니다. 국가의 역할과 책무가 명확히 규명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 안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지금 제가, 그리고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고민의 지점이라고 봅니다.
이재명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에 대한 전반적 평가와 기대는 어떠십니까?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예요.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순서입니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지표들이 말해주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 최저 수준의 생존, 즉 기초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AI와 기본사회라는 야심찬 비전이 순서에 맞느냐는 겁니다. 저는 기본을 말하기 전에 기초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재명 정부가 작년 6월에 출범하면서 국가 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걸었어요. 그러면서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핵심 축을 ‘기본이 튼튼한 사회’로 천명했습니다. 그 아래 하위 과제로 우리가 아는 기본 안전망을 비롯해 통합돌봄, 장애인 삶의 질 향상과 기본적 권리 보장, 출산과 육아, 노후 보장과 연금,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및 은퇴세대 맞춤형 복지와 같은 것들이 있어요. 목록만 보면 시급한 과제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니 그럴싸해 보이죠. 그런데 이 기본사회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들어가보면 너무 모호해요. 기존 사회보장기본법과의 차별성도 없는데, 기본소득과의 관계도 불분명합니다. 원래 기본사회에서의 핵심 엔진이 기본소득이었는데 국정과제에는 빠져있고요. 결국 담론적으로는 급진적인데, 정책적으로는 느립니다. 전형적인 담론과 정책의 불일치에 해당하죠.
현장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해요. 지자체 역량과 중앙정부의 정책 설계 사이에 정합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전달은 지자체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관련 기관이나 센터의 확충도 지자체 책임이예요. 그러면서 정말 필요한 인력 확보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완하겠다는 말뿐이죠. 지자체에는 돈도 사람도 없는데 말이예요.
전반적으로 현정부의 정책 기조에는 복지를 기획하는 주체가 빠져있고, 그렇다고 서비스가 전달되는 전달망이 촘촘하거나 접근성이 높지도 않아요. 게다가 부처 간 칸막이는 여전히 정책 연계를 방해하고 있고 그렇다고 재원문제도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공적 지출 비중이 굉장히 낮거든요. 그런데 6개 국정과제 전반에서 초기 재정 부담과 장기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공통적으로 제기돼요.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 세대 형평성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이죠. 그런데 실제 내용을 보면 청년 보험료 지원이나 군 크레딧 확대처럼 기금 수입을 줄이는 조치들은 포함하면서, 정작 재정을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 같은 고통 분담은 쏙 빠져 있어요. 지원 확대만 강조하고 있는 셈인데, 걱정은 한다면서 대책은 모순적인 겁니다.
전체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취임사도 그렇고, 국정 과제나 정책 기조를 보면 전형적인 성장 중심 논리가 깔려있어요. 분배는 나중으로 미루고요. 이런 경제의 렌즈로 복지를 바라보니 근본적인 변혁은 고사하고 당장의 문제들이 왜 발생했는지조차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복지 관련 정책들을 보면 단편적인 정책들이 계속 중첩만 되거든요. 그 정책들 간의 연계나 통합에 대한 논의는 없이 문제가 생기면 계속 새로운 안들만 쌓아놓고 있는 셈이죠.
결론적으로 현 정부의 기본사회는 ‘토대’의 탈을 쓴 ‘이상향’에 가까워요. 앞서 말씀드렸던 정책 우선순위의 혼란이 여기서 옵니다. 복지국가의 역량이 확보되어야 어느 정도의 기본사회가 가능한 건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역량을 확신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복지국가로서의 역사적 선례가 없거든요. 결국에 역량 부족과 정책 표류, 이로 인한 부정적 피드백과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의 저해로 이어지는 이 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층을 쌓는 건 의미가 없어요. 국가는 기본이 아니라 기초를 증명해야 합니다. 사실 이재명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예요. 어떤 정권이 오든지 정치 지형에 따라 멈추고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약을 이행하고 작동하는 국가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이 이재명 정부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기초를 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학회장님께서는 ‘기초연금 수급연령 상향이 노인의 경제적 불안정성과 노동공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수급 연령을 상향하게 될 경우 저소득층 노인에게 큰 충격이 될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현재 정년 연장이나 법적 노인 연령 상향 등 기준 연령 상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관련하여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연령 상향이라는 것이, 사실 쉬운 이야기는 아니예요. 제가 이와 관련해서 논문을 두 편 정도 투고했는데요, 앞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점차 노인들이 예전보다 ‘젊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에 근거해서 노인 연령을 상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노인들의 소득 공백(Income Crevasse) 역시 굉장히 길어지고 있다는 미해결 과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을 담고 있지 않아요.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 성인들이 노동 시장에서 1차적으로 이탈하는 시기가 대략 43세 정도 돼요. 남성의 노동 시장 진입이 보통 30대 중반을 전후로 발생하니, 사실 굉장히 빠른 시기에 이탈하는 것이죠. 이때 발생하는 이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 자발적 이직의 이미지와는 좀 다릅니다. 특히 40대 후반으로 갈수록 본인의 주된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는 것은 고용조건이 더 열악한 환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해요. 이직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보통 60세 정년을 이야기하는데, 현실에서 60세까지 버티며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건 ‘운 좋은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거예요. 60세면 근로 기간을 꽉 채우는 건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죠. 즉 우리는 평균적으로 43세부터 소득의 불안정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40대 중반에서 50대는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예요. 배우자도 그렇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죠. 결국 돈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가장 큰 불안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연금을 받는 나이를 65세라고 가정하면 이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구간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소득을 벌어들이기 위해 힘든 싸움을 벌입니다. 비정규 노동, 일용직, 플랫폼 노동을 비롯해 직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일종의 생존 게임에 참가하죠. 결국 아프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에서 굉장히 불안정한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가 ‘Income Crevasse’라고 해요. 겨우 30대 초중반에 직장에 들어가 10년도 일을 못하고 나와서 20년을 버티는 거예요. 결국 우리나라 노인들은 실질 은퇴 연령이 73세~74세에 달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해요. 오래 일한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좋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이 부족해서 노동에 참여하거든요. 게다가 노인이 종사하는 노동조건을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어요.
제 연구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수급 연령이 상향되면 어떤 충격이 발생될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소득별로 살펴보았더니, 노인 연령과 기초 연금의 수급 연령 상향은 노인 집단 중에서도 특히 저소득층 노인들의 빈곤 문제를 더 악화할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거죠. 여기서 경제적 불안정성은 여러 지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측정하고, 이것이 노동 공급과 직결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KDI의 주장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어요. KDI는 정년이나 수급 개시 연령 같은 기준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니까요. 제 연구에는 그에 대한 비판을 담았습니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내용이 너무 방대하니 비판 부분을 빼라고 권고했어요. 저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현실을 외면하고 기준 연령만 높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소득 노인들의 빈곤은 더 처참해지고 소득이 끊기는 크레바스는 더 깊어질 게 뻔한데요.
생각해보세요. 한 달에 10만 원을 벌어 살아가는 노인과 100만 원을 버는 노인에게 각각 느껴지는 10만 원이 같을까요? 하늘과 땅 차이죠. 전자에게는 10만 원이라는 돈이 생존 그 자체예요. 저는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기초연금이 35만 원으로 인상되었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충성 원칙에 의해 생계급여 수급자들의 급여가 감액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지동향 과월호에서도 이러한 쟁점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것을 단순히 정합성의 문제로 보시나요, 아니면 빈곤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해 예외를 적용해야 하는 문제로 보시나요?
질문이 조금 어렵네요(웃음).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야기 맞죠? 솔직히 말해서 제도적으로는 보충성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합성에 맞아요. 그런데 수급자 입장에서는 너무한 거예요. 정부 회계상으로는 기초연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서류상 기록되지만, 이것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되면서 생계급여가 사실상 삭감됩니다. 수급자 입장에서는 생계급여가 깎인 만큼 결과적으로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 셈이 되는 것이죠.
저는 이 지점을 한 번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수급자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간 혜택은 0원인데, 회계상으로는 기초연금액만큼 지출된 것으로 표기됩니다. 그렇다면 전체 공적 지출 규모가 실제보다 부풀려져 계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경상수지상 지출로 기록되는 금액과, 생계급여 삭감으로 인해 실제로 세이브(절감)되는 재정 규모 간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계산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어디에서도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워서요. 물론, 정확한 정보나 통계를 어디서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요.
현재 정부와 학계 일각에서는 기초연금 지출 규모를 근거로 ‘재정 부담이 심각하니 수급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었다고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환수된 효과를 낳는 회계 부분을 제외하고, 진짜 기초연금 재정 규모를 다시 계산해보고 싶습니다. 일종의 ‘더블 카운팅(이중 계산)’이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거죠.
2026년 기준중위소득이 역대 최대 폭으로 인상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실제 중위소득과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합니다. 특히, 3년 전 통계가 그대로 반영되는 시차의 문제라거나, 중생보위에서 기본증가율을 임의적으로 낮게 조정하여 통계원 변경의 효과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향후 개편에서 어떠한 부분이 최우선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기준중위소득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이게 단순히 숫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은 80여 개 제도의 적용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받을 자격이 되는데도 받지 못하거나 혹은 받더라도 급여가 삭감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니 정부도 기본 증가율과 추가 증가율을 언급하면서 중위소득을 현실화하겠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정부는 추가증가율을 반영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기본증가율을 묶어두거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씁니다. 결국 추가 인상의 효과가 무력화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정부는 숫자 하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제도의 급여 지출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살펴보면 기준 연령 상향 논의와도 비슷해요. 연령 기준 역시 한번 조정되면, 기존 기준에 해당하던 인구에게 투입되던 공적 예산이 완전히 통제되니까요. 정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죠. 그렇기 때문에 연령 문제와 마찬가지로 기준중위소득을 논의할 때도, 치열하게 투쟁하고 설득해서 현실적인 수준으로 기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약속한 바가 실제로 달성되는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하고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일각에서는 ‘기준중위소득을 그렇게 올리면 재정에 너무 부담이 가지 않겠는가’라는 반론을 해요. 급여 수준이 전체적으로 너무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그 수준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최저임금을 넘을 거에요. 그러니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보다 더 많이 받아가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물론 급여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통계적으로 도출된 기준중위소득과 실제 중위소득의 현실적 격차를 부정하는 데 적절한 근거가 될까요? 재정 건전성을 위해 저소득층의 기준을 중위소득의 50%에서 40%로 낮추자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게 말이 되느냐는 거죠. 현실을 인정해야 적절한 정책이 나오고 조정을 하는데, 왜 사실을 나타내는 통계를 임의대로 조작하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급여 수준이나 통계 산정 방식이 문제라면 그것을 조정하면 되는 것이지, 통계치로 도출된 기준을 고의로 왜곡해서 해결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죠. 이처럼 기준중위소득 문제는 현실과 통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월간 「복지동향」의 구독자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후배 및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자가 되려면 소위 ‘팩트’라고 불리는 보고서들을 하나씩 직접 검증해가며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진짜 공부거든요. 예를 들어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 모형을 봅시다. 정부 기관에서 나왔으니 무조건 믿어야 할까요? 아니예요. 인구학에 정통하신 카이스트의 모 교수님이 지적하신 적이 있어요. 왜 향후 수십 년간 국가가 아무런 정책적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추계를 내느냐는 거죠. 연금이나 출산율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는 당연히 정책적 대응을 할 텐데, 그런 변수는 쏙 빼놓고 기계적으로 돌린 결과값이 과연 ‘팩트’일까요?
경제학자들의 보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 있어요. 당장의 수치 변화 폭이 미미하면, 예측 기간을 30년, 50년, 심지어 100년 뒤까지 확 늘려버립니다. 난다 긴다 엘리트들을 모아 슈퍼컴퓨터를 돌려서 예측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게 당장 내년 GDP 성장률이예요. 예측이라는 것은, 다음해의 것도 어려운 법이거든요. 그런데 2070년, 2080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요? 어불성설이죠. 그런데도 장기 재정 전망 추계는 10년 뒤는 고사하고 100년 뒤를 내다보며 마치 엄청난 파국이 올 것처럼 예고하죠. 막상 뜯어보면 실질적인 수치 변화는 크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그래프에 장난을 칩니다. Y축의 스케일(눈금 간격)을 교묘하게 조정해서, 아주 미세한 차이를 마치 어마어마한 격차나 폭등인 것처럼 시각적으로 호도하는 식이죠.
우리가 이런 주장에 맞서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숫자로 반박하고 증명해야 해요. 그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가정은 과연 적절한지, 과장된 것은 아닌지를 데이터를 통해 입증해내야 하죠. 그 과정이 참 어렵고 고단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맹목적인 믿음을 거두고, ‘팩트’의 이면을 검증하며 읽는 훈련이 필요해요. 단연 연구자뿐만이 아니라, 글을 읽거나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예요.
월간<복지동향>2026년 2월호(제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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