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9618
2015년 어느 날 육아 휴직을 마친 딸이 찾아와서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니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남들에게 애를 맡기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고충을 토로하더니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2015년은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시점이었다. 즉, 큰 전환점을 의미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였다.
당시 20·30세대 젊은 층에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집값이 오르자 주거 불안감이 덩달아 커졌다. 그 무렵 여성의 고용률이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30대 여성의 고용이 두드러졌다. 남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때 딸은 직장을 포기하고 육아를 선택했다.
최근 기획재정부 관리들이 2015년 무렵의 사회적 현상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5년부터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여성의 고용률이 늘어난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과 자녀 양육의 양립이 어려운 현실이 세계 최저 출산율이란 결과를 낳았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이미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가 꾸준하게 활동해 왔는데 여태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말인가. 2006년 이후 4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퍼붓고도 출산율은 줄곧 떨어졌다. 저출산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든지, 돈을 잘 못 써서 해결이 안 됐든지 둘 중 하나 아닌가.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정치권은 저출산 대책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직장과 양육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업과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눈에 띈 것은 여야가 한목소리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한 대목이다. 과연 인구부 신설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저출산은 인간 사회의 누적된 모순이 만들어 낸 사회현상이다. 이런 난제를 개별 부처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동안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가 20년간 활동하면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저출생·고령화에 대비하는 부총리급 ‘저출생 대응 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고, 야당도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필자는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예산권을 가진 경제 부총리가 저출산 문제를 관장하면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지난 20년간 정부가 5년마다 발표한 네 건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살펴봤다. 초창기에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고, 최근에는 ‘전 생애 삶의 질 제고’라는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저출산 문제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씩 하고 각자 대안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주장이 변화를 주도할 격발점(Trigger point)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핵심적인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결하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1996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에 따라 임금 수준, 보육·휴가 등 근로 조건을 동등하게 운영한다. 정규직이 원하면 시간제 근로자로 전환이 보장된다. 일하는 여성이 양육하는데 큰 부담이 없도록 사회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제 한국도 노동시장을 네덜란드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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