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칼럼] 약자와 동행하시겠다고요?

작성자
노원 복지샘
작성일
2022-08-18 13:40
조회
1942




[출처]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8180300075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 급락과 물난리 와중에 유난히 귀에 꽂힌 말들이 있었다. 약자, 사회적 약자, 약자와의 동행 등이 그것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공적 부문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는 데 쓰겠습니다.”(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누군가는 소외받는 그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의 모든 정책은 ‘약자와의 동행’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오세훈 서울시장, 싱가포르 ‘세계도시정상회의 2022’ 개회식 특별연설)

‘사회적 약자’는 정치인들에겐 참 그럴듯한 말인가 보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제1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약자와의 동행’이었다. 약자와의동행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도 직접 맡았다. 오 시장도 지방선거 당시 ‘약자와의 동행’을 핵심 공약으로 강조했다. 취임식에선 약자동행지수를 개발해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 단계부터 반영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런데 출범 후 현 정부의 정책은 정반대로 갔다. 약자는 외면하면서 강자에겐 너그러웠다. 하청노동자 파업에는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이 원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재벌 총수들은 경제회복을 앞세워 특별사면으로 족쇄를 풀어줬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정반대 효과를 가져올, 올해 세수 대비 5년간 누적 60조원이라는 막대한 감세안을 내놨다. 그것도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종합부동산세 삭감, 다주택자 중과율 폐지 등 대기업과 고액자산가들에게 혜택이 쏠리는 ‘부자 감세안’이다. 그러면서 76개 복지제도의 기준선이 되는 기준중위소득 인상을 두곤 재정부담론을 들어 인상률을 깎자고 했다. 결국엔 정해진 룰로 만든 원칙안으로 결정됐지만, 정부가 아끼려 했던 6000억원은 60조원에 비하면 벼룩의 간이다. 이러고도 약자와 동행하겠다고 한다.

물난리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거약자 대책은 또 어떤가. 서울시는 침수피해가 큰 지하·반지하를 없애겠다고 했다가 당장 못하니 20년에 걸쳐 하겠다고 한다. 당장 내일 비 올지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20년 후의 시간표는 희망고문일 뿐이다. 공교롭게 수해 당일 오전 한강의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뷰 포인트를 곳곳에 마련해 해외 관광객을 늘리겠다는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거론했다. 노약자나 장애인 등 약자들의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겠단다.

집중호우 때 신림동 반지하 가족이 겪은 참사는 약자 보호 실패의 상징적 사건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자 발달장애인인 언니, 10대 딸, 가족을 부양한 40대 여성 가장 등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지병이 있는 70대 노모는 함께 살던 중 입원으로 화를 면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이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서울시는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 설치,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등으로 약자와 동행하겠다고 한다.

이러니 어떤 정책을 말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정부·여당, 서울시에 약자란 누구인가. 약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대로, 진지하게 들어보기나 했나. 약자와의 동행을 혹시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는 그럴듯한 배경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마치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솔직한 속내처럼.

고물가 속에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달 시민단체들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25가구의 가계부를 두 달간 조사한 결과는 참담하다. 외식비를 포함한 하루 평균 식비는 도시민들의 한 끼 식비도 되지 않을 8618원이었다. 두 달 동안 수산물이나 육류, 과일을 한 번도 사먹지 않았다는 가구가 각각 56%, 36%, 36%였다. 수급자들은 정해진 소득 안에서 생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식비를 줄였다. 물난리 속에서 부자들은 차를 잃지만 가난한 이들은 집과 목숨을 잃는다. 침수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은 작은 빗소리에도 잠을 설치고 문을 여닫길 반복한다.


 

약자들과 동행하겠다고? 동행에 앞서 약자 옆에 서서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듣기라도 하라. 사진기 앞에서 비스킷만 나눠주며, 60조원 감세 같은 대규모 폭탄으로 발목이나 잡지 말고.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면 약자들의 불안과 걱정을 함께 느끼고 끈질기게 대책에 매달려야 한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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