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칼럼] 가난한 노인, 빈곤한 정책의 나라

작성자
노원 복지샘
작성일
2019-12-17 13:40
조회
31159
지난주는 한국의 불평등 문제나 복지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국제포럼들이 유독 많았고 나도 어쩌다 여기저기 참여하게 되었다. 화려한 장소에서 어색하게 ‘포용국가’를 논하고 다음 장소로 바삐 이동하는데, 경찰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절망적인 “부양의무제 폐지” 외침이 하늘로 솟았다. 그곳을 도망치듯 지나친 뒤 참석한 다음 토론회는 더 어색했다. 유럽학자들의 조언으로 가득 찬 토론회를 마치고 그들과 함께한 만찬장에서 “그런데 한국 노인빈곤율은 왜 이렇게 높나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 순간 목구멍에 뭐가 턱 하니 걸려들더니 내가 지금 여기 앉아 뭐 하고 있나 싶었다.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제대국이지만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상대적 빈곤율 1위의 가난한 노인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 것인지, 노인이 부자인 복지국가에서 온 그들이 사실 어찌 알겠나.

우리나라는 온갖 사회문제를 종합세트로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인빈곤은 이제 곧 고령자로 진입할 베이비붐 세대의 규모까지 고려하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올해 20주년이 되고 기초연금액도 최대 월 30만원까지로 인상되어 우리나라에도 그럴듯한 제도들이 있지만 가난한 노인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유럽 복지국가들이 실행했던 사회정책들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수도 없을뿐더러 복지제도의 원칙만 고수하다 보면 정책도 빈곤해진다.

가난한 노인들의 문제를 마냥 원칙만을 고수하며 천천히 해결되길 기다릴 수는 없다. 구멍이 난 곳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의 66% 이상이 1인가구이고 소득이 그야말로 0원인 가난한 사람들이 30%나 된다. 재산도 소득도 없이 홀로 사는 빈곤한 노인들을, 부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반적인 부양 기대나 부양 의무감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와중에 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무를 강요할까. 정부는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약속을 책임감 있게 이행하라.

두번째 구멍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다. 현재 1인가구 생계급여는 2019년 기준 월 51만원인데 최빈층 노인 40만명은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아도 이것이 소득으로 인정되어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된다.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기초연금이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 정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공공부조제도의 보충성 원리 때문인데, 최빈층이 기초연금을 못 받고 오히려 빈곤선 위의 노인들은 혜택을 받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의 본질은 형평성보다 최빈층의 ‘여전한 빈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부조의 ‘보충성의 원리’ 원칙을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생계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원칙에 따라 불 끄는 방법을 고수하다가 집이 다 타버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생계급여를 전면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더디니 노인 대상 범주형 공공부조를 도입하여 기초연금액과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특성이 고려된 좀더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선을 설정할 수 있다. 둘째는 기초연금의 소득인정액을 빈곤 수준에 따라 다르게 책정하여(슬라이딩 방식)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이 합산된 최종수급액을 다양화함으로써 최빈층의 소득 수준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설계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라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만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의 부가급여를 책정하는 방식 또는 기초연금을 사회수당으로 규정하여 별도지급액으로 인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이 제도보다 앞서야 한다. 복지선진국들의 멋들어진 정책보다는, 설령 ‘누더기’가 되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형 정책 개발과 다양한 시도가 더 중요하다. 정부는 노인빈곤을 재난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

 이승윤 ㅣ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처] 한겨레 [시론] 가난한 노인, 빈곤한 정책의 나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0181.html#csidxf4c05e8319d40acb42acb81ea5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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